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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식중독. 곽란(霍亂)과 토리(吐利)


‘임상칼럼’에는 특정 질환한방 진단 및 치료를 주제로 한방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임상의에게 기고받은 글을 게재합니다. 다만, 본문 중의 소제목과 주석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편집자가 임의로 달았으며, 여기의 내용은 포라메디카닷넷의 공식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written by Myoung-Gil Kang1.

 

주. 무더운 여름철에 음식을 잘 못 섭취하여 식중독에 걸리는 일이 의외로 잦다. 한방에서는 세균에 의한 식중독의 일부가 유상한(類傷寒)에 포함되어 있으며, 유상한에 포함되는 질환 중 대표적인 것이 곽란(霍亂)이다. 이 글에서는 일반적인 식중독의 예시를 들어 곽란(霍亂)의 주요 증상을 설명하였다.

 

토라질 때 더 예쁘다는 평을 아빠한테서만 받고 있는 ‘토리’ 양은 중3이다. 토리 양에게 막 대학 들어간 오빠가 있다. 주중은 물론이요 주말까지 사회인보다 일정이 많으신 ‘광란’ 군이다. 부모님은 사십 대 전형적인 캠핑족. 저번 주에는 변산반도로 캠핑을 갔다. 토요일에 가서 텐트 치고, 오후에 바지락을 잡는다. 저녁에는 모닥불 피우고 얘기하다가 잔다.

  일요일 오전에 해수욕장을 거닐은 후 점심 먹고 돌아오기. 캠핑에 딱 맞는 SUV에서 대형아이스박스 내리는 폼이 캠핑 고수 티가 역력하다. 정말로 바지락이 잡히는 데 가족 모두 신이 났다. 호미로 바닷가 조약돌을 긁어 올리면 동글동글 바지락이 굴러 나왔다. 한 바가지 넘을 것 같다. 해질 때쯤 돌아와 듬뿍 떠 온 바닷물에 담가 두었다.

 일요일 아침 늘 그렇듯이 축구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광란 군이 일찍 일어났다. 어젯밤 남은 숯불이 좋아서 잡아두었던 바지락을 구웠다. 시간이 빠듯해서 익기 바쁘게 30개 정도 먹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아침에 나가는 차에 부탁하여 같이 타고 나갔다. 10시 넘어 일어난 가족들은 바다를 걸었고 돌아와 라면을 끓였다. 아이스박스에 얼음이 아직도 단단하게 얼어 있어 야채들이 싱싱한 듯 보였다. 남은 김밥을 꺼내 라면과 함께 먹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시계를 보니 벌써 4시 넘어간다. 집에 오니 광란 군이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있다. 화장실에 들어가는 데 배를 움켜쥐고, 얼굴이 하얗다. 주룩주룩 설사하는 소리가 밖에서도 들린다. 조금 있으니 구토하는 소리가 들린다. 구토 소리가 우렁차다.

 

주. 이 글은 곽란의 증상을 설명하기 위해 살모렐라증을 상정하고 예시를 든 것일 뿐이다. 실제 여름철어패류를 섭취 후 복통 및 설사 구토가 발생했다면 반드시 진료를 받아야 한다. 비브리오균에 의한 패혈증의 경우 오염된 어패류를 접한 후 8 – 20시간 후에 발병하며 일반적인 식중독 증상과 함께 혈변, 근육통, 피하출혈 등이 동반될 수 있고 치사율이 높기에 매우 주의해야 한다.

 

식중독2이다. 여름철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면 바지락에 세균이 늘어나 있다. 곰국 끓이듯 익혀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게 세균인데 살짝 익혀 먹었으니 식중독이 올 수밖에.

  한의학에서는 이렇게 심하게 토하고 설사하면 곽란(霍亂)’이라 했다. 곽(霍)은 빠르다는 말이다. 아침에 먹은 바지락이 오후에 사고를 일으키니 빠른 것이다. 난(亂)은 난리 났다는 말이다. 구토 설사하는 스케일이 워낙 커서 붙여진 글자다. 광란 군의 곽란은 밤새 이어졌다. 이 좀 나고, 으스으슬 떨리기도 했다. 머리 아프고, 온몸의 근육이 아팠다. 다음 날 되자 구토는 멎었고 설사는 이어졌지만 설사 횟수는 확실히 줄었다. 일요일부터 죽 조금씩 먹고 버텼다. 배가 아파 먹을 수가 없었다.

  화요일에는 팔다리에 쥐가 났다3. 죽을 맛이었다. 쥐까지 나면 가장 심한 곽란에 속한다. 죽만 먹을 일이 아니라 이온음료를 계속 보충했어야 했다. 구토 설사로 몸 안의 이온이 같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근육의 전해질이 불균형해져 쥐가 난 것이다. 물론 첫날 설사 나기 시작하면 진료를 받으면 된다. 하지만 한의원 못 갈 상황이면 이온음료를 마시고, 혹시 모과 있으면 모과차를 진하게 해서 계속 마시면 된다. 집에 있는 이온음료는 보리차다.

  아이스박스긴 했어도 하루 지난 김밥을 몇 개씩 먹은 나머지 가족도 일요일 저녁에 구토 설사를 했다. 구토 설사 한 번씩으로 끝내긴 했다. 식중독이 이렇게 간단히 온 경우에 병명은 ‘토리’(吐利)라 한다. 토(吐)는 구토이고, 리(利)는 설사다. 배가 좀 아플 수 있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나았어도 이틀은 치료를 받아야 뒤탈 없다4. 그 이틀간은 죽 먹는 게 좋다.

사실 토리 어머니는 똑똑한 분이셨다. 바지락 그대로 먹으려 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바닷물로 해금한 다음에 집에 가져와 수돗물로 하루 재울 생각이었다. 바지락의 세균은 민물에 약하기 때문이다. 김밥도 고기 없는 김밥이라 먹였던 거다. 하루 지난 김밥을 가족에게 주는 정도 몰상식 엄마가 아니었다. 문제는 김밥의 야채다. 야채에 묻은 세균도 시간이 지나면 새끼를 친다. 토요일 저녁에 김밥 먹느라고 한번 나왔을 때 여름 온도에 노출되었었다. 깜박하여 구토 설사하는 소동을 치렀다. 김밥은 말아서 4시간 안에 먹는 게 좋다.

  여름철 식중독은 대부분 상한 음식이나 신선하지 않은 해산물, 고기 등에 의해 일어난다. 끓여 먹고 익혀 먹어야 한다.

  한의학에서 끓이지 않은 음식과 물은 ‘생냉(生冷)‘이라 하여 여름에 못 먹게 하고, 세균은 ‘예’(穢)라 하여 위생을 강조한다. 양의학과 같은 생각이다. (끝)




각주

  1. 본인의 요청으로 익명 처리합니다.
  2. 식중독은 식품에 들어 있는 미생물 독소에 의한 것, 동물성 또는 식물성 독소에 의한 것, 화학물질의 오섭취로 의한 것, 세균에 의한 것이 있을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식중독은 살모넬라균(Salmonellae spp.),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 비브리오균(Vibrio vulnificus), 콜레라균(Vibrio cholerae), 보툴리누스균(Clostridium botulinum), 웰치균(Clostridium perfringens) 등의 세균에 의한 것이다. 이 중 앞의 3개가 대표적인 식중독의 원인균이며 살모넬라증의 경우는 갑작스런 복통 및 설사, 두통, 현훈 등과 함께 고열과 오한이 동반되어 古代에는 감기로 오인되기도 하였다. 한의학이 어느 정도 발달한 후에는 이를 ‘상한(傷寒)과 유사하다’는 의미로 ‘유상한(類傷寒)’이라고 별도의 분류에 포함시켜 치료법을 확립하였다.
  3. ≪東醫寶鑑≫은 霍亂 뒤에 잇달아 나타나는 세 가지 대표적인 증상으로 轉筋, 煩渴, 虛煩을 제시하였다. 이 중에서 곽란으로 인한 전근(轉筋)을 한방에서는 진액(津液)이 빠르게 망실되어 종근(宗筋)에 문제가 생긴다고 보고, 약하면 다리에 심하면 복부 근육에 쥐가 난다(陽明屬胃與大腸 以養宗筋 暴吐暴瀉 津液驟亡 宗筋失其所養 故輕者 兩脚轉筋而已 重者 遍體轉筋入腹)고 하였다.
  4. 식중독이라고 하면 흔히 급성 식중독만을 떠올리지만, 만성 식중독도 있다. 그러므로 구토와 설사 등의 증상이 없어졌다 할지라도 가까운 의료기관에 방문하여 후속 처치를 받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