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형 독감과 복서(伏暑)
※ 여기의 한약재나 처방은 문헌에 근거하여 한의학 고유의 변증체계에 따라 제시한 것입니다. 질환의 특성상 한의사의 정확한 변증없이 임의로 사용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무자격자가 임의로 처방할 경우 의료법 및 약사법에 의거하여 처벌받을 수 있으며, 임의 복용 후 발생하는 부작용은 온전히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또한, 자격자가 이 한약재나 처방을 사용할 수는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한의사가 사용할 수 없는 제제 개발에 활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written by 이금산. 포라메디카닷넷.
2025년 11월, 독감이 크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한창 미래의 한의학도가 면접을 볼 시기이지만, 정작 학내에선 동아리나 향후회 등의 종강모임-종강도 안했는데 무슨 종강모임이냐고 했더니 미리 당겨서 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을 들었습니다.-을 자주 하더니 12월 2일 강의실에는 여기 저기 기침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증상이 심한 학생은 진료확인서를 내고 자체 휴강하기도 합니다. 한창 때인 대학생들이 끙끙 앓아눕는 판이니 그 독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재(2025년말)에 유행하는 독감은 대부분 인플루엔자 A형1입니다. 마침(?) 연구실 학생 한 명이 그 급성기의 증상을 고스란히 겪고 회복 중인데, 가래와 기침이 낫질 않는다며 조언을 구하러 왔습니다. 차근차근 분석해주고 처방(아래 ‘II. 완해기’ 말미의 처방)을 내주었는데 하루 정도 복용하고 확연하게 좋아졌습니다.
이 학생 및 다른 환자의 증상을 분석하여 1. 고열이 나는 급성기와 2. 열은 없거나 미약하고 기침과 가래가 주인 완해기로 나누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증상을 기술하고 그 증상을 한의학에서 어떻게 분석하는지 서술한 뒤 각각의 추천처방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번 글은 변증논치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작성2했습니다. 처방에 사용한 본초의 설명은 다른 임상칼럼A,B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I. 급성기
○ 약간의 먹먹한 두통이나 오한이 있다가 하루도 지나지 않아 38.5도를 넘나드는 고열이 발생합니다. 초기 증상이 하루 이틀 정도 진행된 뒤라야 본격적인 몸살이 나는 일반적인 감기와는 다른 양상입니다.
→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질병을 외부의 나쁜 기운(外邪)이 인체를 침범한 결과로 보고 크게 상한(傷寒)과 온병(溫病)으로 나눕니다. 이 중에서 두통이나 오한이 있다가 하루 사이에 고열이 발생하는 경우는 대체로 온병(溫病)의 범주에 속합니다.
○ 온몸이 아픕니다. 흔히 말하는 몸살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전신이 뭐에 맞은 듯 아픕니다.
→ 갑작스러운 고열을 어떻게든 식히려고 수분을 끌어다가 몸 곳곳, 특히 기육(肌肉)에 부랴부랴 공급하지만 그 수분이 정체되면서 경락을 눌러 통증이 생긴다고 보았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온병(溫病)은 증상과 그 양상에 따라 세별(衛分證, 氣分證, 營分證, 血分證)3하는데, 고열과 근육통이 있으면 기분증(氣分證)으로 취급합니다.
○ 목도 아픕니다. 이는 바이러스와 열심히 싸우느라 편도선이 과하게 커지고 그 주위의 임파선도 덩달아 커지면서 생기는 통증4입니다.
→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에서 울열(鬱熱)되어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으로 보았습니다. 이 ‘빽빽한 열(鬱熱)’을 두고 옛사람들은 은 바른 기운(正氣)과 나쁜 기운(邪氣)이 싸우는 과정을 통해 축적되어 생겼다고 설명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분류 중 위분증(衛分證)에 해당합니다.
○ 가래가 많이 나오고 기침을 심하게 합니다.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도 가래 또는 콧물이 너무 많다보니 답답해서 일어나야 합니다. 소변도 잘 보질 못합니다. 분명 요의는 있는데 막상 배출이 잘 안됩니다. 물을 많이 마심에도 불구하고 진한 소변이 나옵니다. 배출될 때 요도가 약간 뜨겁다는 느낌도 듭니다.
→ 현대 의학에서는 가래와 기침을 상기도감염증을 겸한 것이라고 봐서 치료해야할 증상으로 보는 반면, 소변 양상은 무시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한의학에서는 이 두 가지 증상이 다양한 온병(溫病)의 세부적인 분류 기준이 됩니다.
COVID처럼 일반적인 온병(溫病)이라면 가래의 양이 적고 매우 끈적거리기 마련입니다. 옛사람들은 인체의 수분을 빠르게 소모했기 때문에 농축 양상을 보인다고 생각을 했고, 그에 따라 몸에 진액을 충분하게 공급하는 방식으로 치료를 행했습니다.
그러나 고열이 있으면서 진액을 빠르게 소모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양의 가래가 나오는 현상을 접하면서 기존의 온병(溫病)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즉, 청대 중반 이후에는 이런 유형을 고열뿐만 아니라 인체의 정체된 수습(水濕)도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온병(溫病)은 ‘온열병(溫熱病)’과 ‘습열병(濕熱病)’으로 다시 나뉘게 됩니다.
당시에도 지금의 인플루엔자처럼 발병하는 시기가 비교적 뚜렷하게 차이가 났기에 서온(暑溫), 복서(伏暑), 동온(冬溫), 춘온(春溫), 습온(濕溫) 등으로 분류하기도 했습니다. 18세기 말의 《온병조변(溫病條辨)》에서는 고열이 있으면서 수분대사 정체를 겸하면 서온(暑溫)과 복서(伏暑), 습온(濕溫)이라 하고, 그 원인을 한 여름의 무더운 기후가 인체에 영향을 주는 상태에서 나쁜 기운이 침범했는데 이를 몸이 견디지 못해 생겼다고 설명합니다. 이 중에서 나쁜 기운이 해소되지 못하고 몸에 계속 잠복해 있다가 여름이 지난 뒤에도 발병하는 경우를 예로부터 ‘복서(伏暑)’라고 칭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복서(伏暑)라 이름 붙었더라도 본질은 같고 발생 시기만 다를뿐이니 ‘서온(暑溫)’의 일종이라고 재정립하고, 다시 네 가지 유형으로 대별하며 각각의 처방을 제시합니다(아래 원문 참조).
이 처방 중에서는 통조수도(通調水道)5 를 간접적으로 돕고 삼초기화(三焦氣化)6를 원활하게 만들기 위한 활석(滑石)이 쓰인 것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소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감법인 셈입니다.
정리하면, 표증(두통, 오한)이 있으면서 기육의 긴장이 없거나 약하면서 곧바로 고열이 나므로 온병입니다.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고열과 온몸의 동통이 있으므로 온병의 기분증이자, 인후통이 있으므로 위분증에 해당합니다. 또한, 가래와 콧물(+기침)이 많고 소변이 짧고 진하므로 온병 중 서온(暑溫)≒복서(伏暑)에 해당합니다. 즉, 서온(暑溫)≒복서(伏暑)의 위·기분증(衛·氣分證)으로 변증하고 치료합니다.
(단, 가래와 콧물의 끈적거림이 심하거나 없고, 건조한 듯 목이 따가우면 다른 범주로 취급하여 처치해야 합니다.)
이를 종합하여 조성한 처방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서에는 네 가지로 세분화되어 있지만 증상의 변화가 빠르므로 ‘고열’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점을 기준으로 앞뒤를 보강하여 조성하였습니다.
은교산가감(銀翹散加減)
金銀花 連翹 1.2
桔梗 白花前胡 只殼 香薷 1
半夏製 茯苓 石膏麤末 0.7
甘草生 杏仁 辛荑 淡豆豉 0.5
滑石 白扁豆 0.3
竹瀝 1mL
* 1錢=4g, 2貼/日, 일 4회 복용.
* 일반적으로 2~3일분 처방.
* COVID의 급성기에 사용하는 銀翹白虎湯加減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潤肺, 凉血에 관련된 약물을 빼고, 서온(暑溫)의 일종임을 감안하여 신가향유음과 이진탕, 육일산의 개념을 도입했다는 점입니다. 비슷하게 보이지만 조합을 바꿔 전혀 다른 처방으로 바꾼 셈입니다.
II. 완해기
○ 열이 내리고 통증도 없어졌으나 가래와 기침이 남아서 괴롭습니다. 코를 팽팽 풀다보니 비강도 부어 코맹맹이 소리가 납니다. 기침을 너무 많이 해서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거니와 중탁하게 변합니다.
→ 진통소염제와 진해거담제를 복용하여 급성기를 무사히 지내더라도, 이처럼 가래와 기침이 일주일 이상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진해거담제를 복용하면 가래와 콧물이 끈끈해지면서 배출하기 힘들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남아 있는 열증을 삭이고, 삼출물의 배출을 도우며, 간접적으로 수분대사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해소합니다. 단, 수분대사를 너무 촉진시키면 기관지의 건조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약량을 적절하게 조절해야 합니다. 이를 처방으로 조성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행소산가감(杏蘇散加減)
香薷7 1.2
桔梗 只殼 白芷 1
半夏製 茯苓 辛荑 0.7
甘草生 杏仁 鬱金 生薑 大棗 0.5
百部根 紫菀 款冬花 升麻酒洗 0.3
* 1錢=4g, 2貼/日, 일 4회 복용.
* 일반적으로 1~2일분 처방.
* 氣虛가 확연한 노약자의 경우 아래 원문의 加減生脈散 참조
III.《온병조변(溫病條辨)》 참고 조문
○ 暑兼濕熱 偏於暑之熱者為暑溫 多手太陰證而宜清, 偏於暑之濕者為濕溫 多足太陰證而宜溫, 溫熱平等者兩解之. 各宜分曉 不可混也.
○ 長夏受暑 過夏而發者 名曰伏暑. 霜未降而發者少輕 霜既降而發者則重 冬日發者尤重 子·午·醜·未之年為多也.
○ 頭痛微惡寒 面赤煩渴 舌白 脈濡而數者 雖在冬月 猶為太陰伏暑也.
○ 太陰伏暑 舌白口渴 無汗者 銀翹散去牛蒡·元參加杏仁·滑石主之.
○ 太陰伏暑 舌赤口渴 無汗者 銀翹散加生地·丹皮·赤芍·麥冬主之.
○ 太陰伏暑 舌白口渴 有汗 或大汗不止者 銀翹散去牛蒡子·元參·芥穗 加杏仁·石膏·黃芩主之, 脈洪大 渴甚汗多者 仍用白虎法, 脈虛大而芤者 仍用人參白虎法.
○ 太陰伏暑 舌赤口渴汗多 加減生脈散主之.
銀翹散去牛蒡子元參加杏仁滑石方
即於銀翹散內 去牛蒡子·元參 加杏仁六錢 飛滑石一兩. 服如銀翹散法. 胸悶加鬱金四錢 香豉四錢, 嘔而痰多 加半夏六錢 茯苓六錢:小便短 加薏仁八錢 白通草四錢.
銀翹散加生地丹皮赤芍麥冬方
即於銀翹散內 加生地六錢·丹皮四錢·赤芍四錢·麥冬六錢. 服法如前.
銀翹散去牛蒡子元參芥穗加杏仁石膏黃芩方
即於銀翹散內 去牛蒡子·元參·芥穗 加杏仁(六錢) 生石膏(二兩) 黃芩(五錢). 服法如前.
白虎法·白虎加人參法(俱見前)
加減生脈散方(酸甘化陰)
沙參(三錢) 麥冬(二錢) 五味子(一錢) 丹皮(二錢) 細生地(三錢)
水五杯 煮二杯 分溫再服.
○ 伏暑·暑溫·濕溫 證本一源 前後互參 不可偏執.
○ 手太陰暑溫 如上條證 但汗不出者 新加香薷飲主之.
新加香薷飮方(辛溫復辛涼法)
香薷(二錢) 銀花(三錢) 鮮扁豆花(三錢) 厚朴(二錢) 連翹(二錢)
水五杯 煮取二杯. 先服一杯 得汗止後服, 不汗再服, 服盡不汗 再作服.
○ 燥傷本臟 頭微痛 惡寒 咳嗽稀痰 鼻塞 嗌塞 脈弦 無汗 杏蘇散主之.
杏蘇散方
蘇葉 半夏 茯苓 前胡 苦桔梗 枳殼 甘草 生薑 大棗(去核) 桔皮 杏仁
[加減法]無汗 脈弦甚或緊 加羌活 微透汗. 汗後咳不止 去蘇葉·羌活 加蘇梗. 兼泄瀉腹滿者 加蒼朮·厚朴. 頭痛兼眉稜骨痛者 加白芷. 熱甚加黃芩 泄瀉腹滿者不用.
각주
- 초봄에는 인플루엔자 B형이 많습니다.
- 최근 임상가에 ‘탕증’이 유행합니다. 고방 113개와 몇 안되는 후세방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일까요? 섭천사, 오국통, 왕사웅, 하렴신, 조병장, 정감인, 허준 등등의 기라성 같은 의사들은 바보라서 ‘탕증’ 또는 ‘모병에는 모처방’이란 수단을 무시했던 것일까요? 쟁쟁한 선배 의가가 수도 없이 변증논치를 강조한 이유가 뭘까요? 변증(辨證)이 없는데 논치(論治)가 가당키나 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굳이 이 글을 작성하는 이유입니다.
- 위분, 기분, 영분,혈분의 구분은 현대의 해부학적 위치와는 관련도가 매우 낮습니다. 심혈관계에의 영향 여부로 두 가지로 나누고, 다시 증상의 양상과 경중에 따라 각각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 고열이 있으며 목이 아픈 증상과 더불어 머리가 먹먹한 정도가 아닌 깨질 듯한 두통과 구역감이 심하게 있으면 뇌수막염을 의심해야 합니다.
- 한의학에서는 폐의 호흡이 수분을 대사의 통로로 운행시키는 근원적인 힘이 된다는 점에서 폐는 물길(水道)를 통하게 하고 조절 한다고 봅니다.
- 한의학에서는 섭취한 물이 소화기계 바깥에서 대사되는 곳을 ‘삼초(三焦)’라는 가상의 조직을 설정하여 설명합니다. 또한, ‘물’이라는 액체 형태가 아닌 일종의 수증기나 안개와 같은 기체로 변하여 몸의 곳곳에서 움직인다는 뜻에서 ‘기화(氣化)’라고 합니다.
- 暑溫의 후유증임을 감안하여 紫蘇葉을 香薷로 대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