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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20년 03월

본초총론 약성론

배오(配伍) : 칠정(七情), 약대(藥對), 군신좌사(君臣佐使), 인경(引經) 등

제7절 배오(配伍). 치료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여러 약물을 섞는 것을 配伍라 한다. 복잡한 病變에 대응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배합하여 사용하였으며, 성분이 아닌 천연물을 사용하므로 최대의 효과를 위해서는 다양한 약물의 효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이상적인 배합 기술이 필요하였기에 다양한 이론이 발달하였다. 七情論, 藥對論, 君臣佐使論, 引經報使論 등이 配伍에 관련된 대표적인 이론이다. 이 절에서는 이러한 이론을 간략히 기술하였다.

본초총론 본초학의 역사

우리나라의 본초사 1 (上古~高麗)

巫와 醫의 경계가 불분명한 시기인 上古時代, 중앙집권국가답게 국가 주도의 의학교육이 시작되며,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의학지식이 확장된 시기인 三國時代, 唐과의 교역을 통한 응용 약물의 증가가 이루어진 시기인 南北國時代, 향약 태동의 시기인 高麗時代의 本草史를 약술하였다.

본초총론 본초학의 역사

우리나라의 본초사 2 (朝鮮~近代)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까지 향약과 더불어 약물 기록의 전문화 및 상세화가 국가 주도로 이루어졌다. 또한, 의학의 발달이 고대로부터 중세까지 지속적으로 국가가 앞서서 관리해온 결과 관념적 약리 보다는 실용적 측면에서 본초가 정리되었다. 즉, 음양오행학설을 기반으로 약물의 작용 기전을 설명하려는 태도보다는 새로운 효능에 대한 경험을 더하고 기존의 것과 함께 요약 정리하여 활용에 쉽도록 하였다. 이러한 특징은 곧 조선 말~근대에 이르러 새로운 의론과 결부된 본초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본초총론 본초학의 역사

중국의 본초사 1 (先秦~南北朝)

先秦時期를 거쳐 巫와 醫가 분리되고 본초 지식이 발아하였으나, 본초와 방제가 혼재되어 있는 등 본초가 별도의 전문 지식으로 안착되지 못하였다. 《神農本草經》의 내용으로 보아 秦漢時代의 후기에는 본초학의 큰 얼개가 형성되기 시작하였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계가 뚜렷한 三品 분류의 방식, 판본에 따라 일관적이지 못한 기술 등으로 보아 본초학이 형성되었다 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한계와 단점을 일차적으로 해소한 魏晋南北朝의 陶弘景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본초학이 전문 분야로 자리 잡았다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중국 先秦~南北朝 시기의 본초사를 약술하였다.

본초총론 본초학의 역사

중국의 본초사 2 (隋唐~宋)

조판인쇄술(隋唐)과 활자인쇄술(宋)의 발달에 힘입어 각종 의서 및 본초서가 국가의 주도로 교정 출간되었다. 특히, 唐代 이후로 사용된 900여종의 약물이 北宋의 시기에 집중적으로 정리되었으며, 이 때에 유입된 본초를 구분하기 위한 약물의 기원을 중시하였다. 특히, 《證類本草》류의 서적은 중국뿐만 아니라 주위 국가에도 널리 퍼져 영향을 주었다. 또한, 경험적 치방을 대신하여 《素問》과 《傷寒論》에 입각한 이론에 입각한 治方이 등장하여 金·元 시대의 藥理 발달의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

본초총론 본초학의 역사

중국의 본초사 3 (金元明淸)

이전 시대에 1750여개의 본초가 정리되었으므로 金元時代의 藥理의 발달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금원사대가 중 李杲를 비롯한 補土波가 후대의 약리설에 끼친 영향은 주목할만 하다. 그러나 당시 성행했던 혼오용품의 연구는 미진하였다. 明代 중반에 출간된 《本草綱目》은 1900여개의 본초를 기원과 약리를 종합하였고 후대의 본초서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本草綱目》 이후에는 본초의 각 분야 전문서와 약리서, 요약활용서 위주로 등장하였으며, 淸代에는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복고주의에 영향을 받은 약리설이 발달하였다.